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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마>> 라는 규칙의 악순환, 스스로 알아서 지키는 유토피아같은 세상
    달을파는아이 2009. 3. 6. 12:54

    회사에 "지각비" 라는 규칙이 생겼다. 사람들이 5분은 당연한것이고, 10분, 심하게는 30분도 미안한 기색없이 지각을 한다. 그럴수도 있는 "지각"이지만, 지각은 "깨진유리창" 처럼 회사를 병들게 한다.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 그것보다 더 큰 규칙들이 무너진다. 일을 해야하는 시간에 다른일을 하는 사람이 생긴다. 하루면 끝날일이 3일이 걸리고, 한달만에 끝내야할 프로젝트는 그 끝을 알 수 없이 흘러간다.

    여기서 사장은 "솔선수범"이라는 카드대신 , "하지마규칙" 카드를 꺼내든다. 사장으로써는 당연할 수 있는 조치다.

    "지각 하지마 규칙 1조" 에는 9시 출근에서 10분이 늦을때마다 5000원의 벌금형이 명시되어 있다. 매일 10분씩 지각을 하던 사람들에게 5000원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한달 20일을 근무한다고 하면 10만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한동안 이 규칙은 잘 지켜진다. 형벌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잘 지켜지는 출근시간으로 인해 사장은 흐믓해한다. 자기가 만든 규칙이 효과를 발휘함으로 인해서 , 신이 된 기분이 든다. 스스로 능력자가 된것같아 뿌듯하다.

     

    하지만 이 아슬아슬한 균형은 "첫" 지각자가 생기면서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예전같으면 5분정도 늦어도 느긋하게 걸어갔을 거리를 뛴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왜 내가 뛰어야 하는거지 라는 불만이 생기면서 , 자기합리화의 스위치가 켜진다. 지각을 했지만, 자기는 잘못한게 없다라는 논리를 끼워 맞춰간다.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고, 회사가 잘못이라고 결론내린다.

    "지각을 이렇게 철저하게 지킬꺼면, 퇴근시간도 철저하게 지켜야하는거 아닌가?"

    완벽한 논리다. 어린아이가 봐도 당연한 논리다. 하지만 사장의 입장에서는 지각은 지켜야할 당연한것이고, 퇴근은 일이 있으면 어쩔수 없는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이 두 시각차는 "지각하지마 규칙1조" 로 인해 더 벌어지게 된다. 예전에는 늦게 야근하면 아침에 10,20분정도 늦게 와도 되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직원의 불만은 계속 쌓여가고, 사장도 그런 불만을 가진 직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두번째 지각자가 발생한다. 이번엔 단순한 지각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지각이다. "아파서"라는 이유다. 아프다는데 어쩔수 없지 않은가? 라고 결론내리면서 벌금을 면해준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멀쩡해보이구만" 이라는 불만이 스믈스믈 기어나온다. 

    예기치 못한 사건을 계기로 사장은 "지각하지마 규칙 2조"를 만든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경우 미리 전화를 한다. 전화를 할경우 예외사항으로 한다.

     

    한동안 평화롭던 사무실에 세번째 지각자가 나타난다. 세번째 지각자는 30분이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얼굴엔 미안한 감정이 없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당당하다. 당당하게 1만5천원은 내려놓는다. 이 세번째 지각자는 "돈내면 지각해도 된다" 라고 생각한다.

    사장의 애초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각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원래 이유는 "모두 정시에 도착해서 같이 일을 시작하고 , 기본적인 규칙을 지킴으로써 더 큰 규칙들도 지켜져 평화로운 회사가 되었으면 한다" 였다. 하지만, 이제는 "규칙이라는건 돈 있으면 안지켜도 된다" 라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같은 회사직원이라도 연봉이 다르고 , 개인적인 주머니 사정이 다르다.

    돈없는 직원은 밤늦게 죽도록 야근해도 지각을 할수가 없지만, 돈있는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도 돈을 내가면서 지각을 한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직원들간에 보이지 않는 어색함이 생겼다.  

     

    시간이 가면서 지각자수는 예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늘었다. 달라진건 더 당당해진 지각자들과 거짓핑계를 대는 아침전화, 그리고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이다.

     

    사장은 "지각하지마 규칙 3조"로 "아프거나 다른 이유가 있으면 증거를 제시해야한다" 고 발표한다. 그와 더불어 규칙1조를 강화해서 5000원을 1만원으로 올린다.

     

    새로생긴 규칙으로 다시 평화로워 질것으로 생각했던 사장은 점점 더 수렁에 빠진다.

    진짜 아픈사람들은 아파죽을 지경에도 증거를 만들어야 했고, 직원들의 빈부격차(?)도 더 벌어지게 되었다.  일이 있음에도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직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직원과 사장간의 언쟁이 빈번해졌다.

     

    결국 퇴사자가 생기게 되고, 술렁이는 회사 분위기는 걷잡을수가 없다.

     

    사장은 계속 새로운 문제거리에 새로운 규칙들을 만듬으로써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규칙은 사장스스로도 외우기 힘들정도까지 생겨났다. 엄청난 수의 규칙들이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려줬지만,  항상 예기치 못한 예외 사항이 발생했다. 그 예외사항에 대해 또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면서 규칙은 점점 규칙을 위한 규칙이 되어갔다.

     

    처음 규칙은 회사를 좀더 좋은곳으로 만들기 위한 좋은 취지로 만들어 졌지만, 결국엔 회사가 규칙의 올가미에 묶여 버렸다. 너무 많아진 규칙을 적용하기가 어려워진 사장은 규칙만을 관리하고 적용하는 직원을 한명 더 뽑게 된다. 규칙을 위한 직원이 생기면서 회사는 예전엔 필요치 않았던 비용이 추가되어 힘들어 진다.

     

    더 기가 막힌건 , 이 규칙을 위한 직원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자기는 규칙을 관리하는 사람이니까 규칙에서 예외라고 생각하고 지키지 않거나,  직원들에게 돈을 받거나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몰래 벌금을 면해 주는 일이 생겼다. 사장은 규칙을 관리하는 직원을 위한 규칙을 새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고, 규칙을 새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사장은 실제 돈을 벌어 회사를 잘 나가게 하는일보다 규칙을 만드는일에 더 시간을 활애하게 되고 신경을 쓰게 되었다 . 스스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수렁에 빠져나올길을 찾지 못한다.

    모든 규칙을 없던일로 하기엔 너무 멀리와 버렸다.

    "애초에 그냥 스스로들 다 잘 지켰으면 이런일도 없잖아!!" 라며 친구와 만난 소주집에서 한탄을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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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파는아이 @ nalab.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