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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먼자들의 도시, 우리는 눈을 뜨고 있는걸까?
    달을파는아이 2008. 12. 21. 15:19

    영화로도 얼마전에 개봉한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원작이 있는건지 몰랐는데,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손에 집어 들게되었다. 영화를 볼까했는데, 그래도 원작을 보고 보는게 나을것같다는 생각에서다.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정신을 놓았다. 정신없이 책을 읽은것같다. 사실 보면 그렇게 대단한 내용도 없는것같은데 , 몰입도가 상당한 책이었다. 노벨문학상을 탄 사람의 내공탓일까?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다. 사람들이 눈을 다 멀고, 한 여자만 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어느날 갑자기, 정말 갑자기 아무이유없이 한 남자가 눈이 멀게 된다. 보통 칠흙같은 어둠으로 표현되는 실명이지만, 책에서는 너무 밝은 빛을 봤을때 보이지 않는 것 비슷한 실명으로 묘사한다. 그냥 실명과 구분해서 백색실명이라고 부른다.

    눈이 갑자기 안보이는 이 남자를 시작으로, 이 남자와 접촉한 사람들도 서서히 눈이 멀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눈이 먼 사람들이 늘어나서 도시 전체, 나라 전체가 눈먼 사람들로 가득차게 된다. 하지만 어찌된일인지 한 여자만 눈이 멀지 않는다. 그 한 여자의 눈으로 장님만이 가득한 도시를 묘사한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서로 넘어지는 사람들, 길을 잃어 아무집이나 들어가서 사는 사람들, 화장실을 찾지 못해 길에서 배변을 해서 온도시에 넘쳐나는 악취들 등등 너무나도 리얼하게 묘사된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너무나도 처절한 묘사에 실제로 이런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착각이 들정도다.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리고 약간은 멍해졌다. 마지막에 눈뜬 여자가 창 밖을 보면서 "도시는 그래도였다." 라고 한것처럼 나도 창밖을 봤다. 도시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사람들은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돌아다니고, 차들은 빵빵거리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컴퓨터는 파란 불을 번쩍거리고, 수돗물도 깨끗이 나온다.

     

    이름없는 눈먼 자들

    책을 다 읽고 한참뒤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책에 사람들 이름이 전혀나오지 않는다는점이다. 의사,의사의 아내, 첫번째눈먼사람, 검은 안경을 쓴 여자.. 모두가 이런식이다.  책 내용 중간에 글을 쓴다는 작가가 나온다.  아무래도  '주제 사라마구' 자기자신같다. 그 작가에게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때, "눈먼 사람에게 이름은 필요없소, 내목소리가 나요. 다른건 중요하지 않소" 라고 대답한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왜 이름이 필요없을까? 눈먼사람들이 있는곳에서도 이름은 필요할텐데.. 이해를 할수가 없었다. 몇일이 더 지난후에 깨달음을 얻은것처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가가 일부러 이름을 말하지 않고 , 그 사람의 직업이나 겉모습의 특징만으로 묘사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것같았다.

     

    사실은 눈먼자들의 도시에 사는 우리들

    작가는 눈먼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을 묘사하고 싶었던것같다. 모두가 눈을 뜨고 볼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실상은 눈먼자들의 도시속의 인물들과 하등 다를바가 없다는것을 비꼬아서 말하는것같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때, 그 사람의 깊은 마음속을 보지 못하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이름은 명함속에 글자를 박거나 , 전화를 걸었을때 바꿔달라고 할 인덱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건 그 사람이 무슨일을 하는지, 어떤 외모를 가졌는지이다.

    젊고 매력적인 아가씨를 볼때의 활홀감이나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권위에 눌릴때나 작가가 적은 책의 내용보다 작가가 유명한 작가인지 아닌지에 더 관심을 둔다.

    눈먼 세상에서는 대머리 할아버지와 젊고 매력적인 아가씨가 진심으로 사랑을 할수 있게 되고, 의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명함 타이틀이 되어 버린다.

    작가는 눈뜨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더 못보고 있는게 아닌가? 라고 물어보는것같다.

     

    악취나는 세상

    눈먼자들이 눈을 멀게 된후 가장 처음 처하게 되는 위기는 밥이다. 종이쪼가리 지페를 들고 수퍼에 가면 지천에 널린 음식들은 눈먼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고는 아무꺼리낌없이 갈수 있는 곳도 눈먼자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할지 모르는 험난한 길이다.

    화장실을 찾지 못하거나, 화장실에 왔지만 제대로 처리를 하지못하게 된 눈먼자들의 도시는 지옥같은 악취에 시달리게 된다. 식수도 없어 빗물에 몸을 싯어야 하는 사람들은 이제 악취에 익숙해져 간다. 분명히 악취가 있고, 썩은 음식을 입에 넣지만 모두가 어쩔수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냄새없는 악취가 사방에서 풍겨나온다. 얼굴을 찡그리게 되는 그 악취들은 분명히 모두의 코를 자극한다.

    "너 몸에서 냄새나"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몸에서 냄새가 더 나고 있다.  누구하나 떳떳히 자기는 깨끗하다고 말할수 없다. 세상엔 이미 악취가 진동을 하고 , 모든 사람들 몸에 스며들어있다.

     

    눈을 멀게 하는 세상

    눈먼 세상에서는 눈뜬사람이 왕이다. 다행히 소설속의 의사의 부인은 왕노릇을 하지 않는다. 충분히 왕이되고, 세상 모든것을 취할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멀쩡한 사람들을 눈먼자들로 만들려는 시도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눈먼자들의 세상에서는 눈을 뜬 사람이 왕이라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눈멀게 만든다.

    멀쩡히 눈을 뜨고 있지만,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언론을 장악해서 TV넘어 진실을 TV로 가린다. 신문 너머 사실을 신문지로 숨긴다. 세상 사람들의 이익인양 떠들며 , 자기 이익만 챙긴다. 눈앞에서 뻔히 벌어지는 이런 약탈행위들을 우리는 보고도 보지 못한다.

    이미 우리는 눈이 멀어버렸다.

    눈뜬 자들은 눈멀어버린 우리들에게 친절히 길을 안내한다. 자기만 따라오면 안전하고 깨끗하며 풍요로운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친철한 그 사람을 의지 할곳없는 눈먼 우리들은 믿고 따른다.

    바로 눈앞에서 그 사람들이 어떤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춥지 않게 목도리를 벗어주는 따뜻한 사람일 뿐이다.

     

    눈을 떳을때...

    우리가 눈을 떴을때 , 눈앞에 총구를 볼지도 모른다. 입막음을 당한체 "다른 사람에게 한마디라도 하면 죽여버리겠다" 라고 협박을 당할지도 모른다. 힘겹게 눈을 뜬 사람들은 다시 눈을 감을지 모른다. 소설에 유일하게 눈뜬 사람인 의사아내처럼 차라리 모두가 눈멀었으면 자기도 눈이 머는게 낫겠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책 마지막을 보면, 사람들이 다시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한다. 우리들의 가려진 눈도 서서히 떠지려고 한다. 모두가 눈을 뜨고 ,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똑똑히 보는 날이 올것이다. 

    그때쯤 되면, 다시 한번 세상이 좀 달라질까? 




    눈먼 자들의 도시 - 10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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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파는아이 @ nalab.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