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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해지고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사람들..
    달을파는아이 2013. 2. 5. 08:57


    KTX를 타고 출장을 갈때면 세스고딘형의 “보라색소가 온다”는 책이 생각난다. 언덕위에 노란소들이 풀을 뜯는다. 사람들은 한마리 한마리 소의 성격에는 관심이 없다. 소는 소들로 한덩어리로 묶인다. 소의 평범덩어리다. 그 중에 보라색소가 한마리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 소에 관심을 갖는다. 그 소의 성격, 생일, 성별, 취향.. 모든것이 뉴스거리다. 이야기 거리다. 


    요즘 드는 생각이 있다. 구지 리마커블해질려고 노력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남들이 알아서 평범해지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안하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고 리마커블해진다. 영어태교에 목숨걸때, 그냥 편안하게 퍼질러자고, 4살짜리의 본토적인 헬로발음에 박수칠때 시골 촌구석에 개구리 잡아먹게 하고, 지잡대라도 대학이라고 목숨걸때, 내가 진짜 좋아하는게 뭔지를 찾아서 고3때 전국여행을 가고..  



    평범함의 다른 이름 



    평범함의 다른 이름은 안정이다. 평범함이 안정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은 더욱 더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비평범해야할 세대인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평생을 평험함으로 살기 위해, 정말 평범하게 도서관에 모여있다. 아침 일찍 부터 밤 늦게까지 , 바로 옆자리에 앉은 대단히 평범한 학생보다 더 평범해 지기 위해 기를 쓴다. 


    평범함의 다른 이름은 안정이다. 안정의 다른 이름은 공무원이다. 세상을 거대한 평범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 끝임없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공무원집단이다. 그 곳에 들어가면, 평범함에서 승리했다고 볼수 있다. 꿈을 이루고, 평생을 평범하게 살 수 있다. 그속에서 안심을 한다. 도서관에 모여, 서로가 서로를 보며 안도했던것처럼. 관공서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오늘도 튀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언젠가 부터 우리나라는 어딜가나 같은 풍경이다. 내가 서울에 있든, 부산에 있든, 어떤 작은 도시에 가든..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 안내표시와 네비게이션의 지점표시가 없다면, 나는 어디에 살든 다르지 않다. 같은 치킨을 시켜먹고, 같은 마트에 간다. 마트에는 구별되지 않는 얼굴들이 같은 옷을 입고 줄지어 소리 지른다. 그 도시의 특산물은 사라졌고, 이 동네의 작은 맛들이 없다. 거기에 가야만 먹을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잘려져 나간다. 



    숨막히게 같은 풍경


    평범함은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옆동네와 같은 마트가 없으면 안되고, 서울사람들이 먹는 치킨이 아니면 안된다. 모든게 심심해졌다. 어딜가나 같은 놀부부대찌개의 맛, 어딜가나 같은 스타벅스의 향기.  평범함이 우리나라를 덮어 버렸다. 까만 콘크리트처럼. 모두가 무채색이다. 


    각 지자체들은 축제를 연다. 옆동네 축제에 나왔던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비보이가 춤을 춘다. 국악인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똑같은 솜사탕에 번데기, 옥수수 구이를 판다. 거기엔 스토리가 있지만, 스토리에 감동이 없다. 단지 시간 떼움이 있고, 공무원만의 뿌듯함만 있다. 오히려, 쓸데없는 축제를 안여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 



    평범해지려는 발버둥


    어찌 페이스북도 안할 수가 있지? 어떻게 스마트폰이 없을 수가 있지? 어떻게 토익공부를 안할 수가 있지? 어떻게 1박2일을 안볼 수가 있지?  이 강압적인 평범의 압박은 쉽게 견뎌내기가 힘들다. 평범하고 싶지 않다는건, 안정을 놓치고 , 불편함을 감수해야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보라색소가 보라색소가 된건 자기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부모가 보라색이었을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 진짜 리마커블하기 위해서는 소가 스스로 보라색 페인트를 몸에 발라야한다. 소 스스로 “보라색”을 칠하면, 남들보다 튈것이고, 그러면 다른 소보다 인기를 끌 수있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물론 소는 그런 자각이 없다. 


    보통 사람이 리마커블해지는것은 , 평범한 소가 스스로 보라색 페인트를 바르는 것만큼 어렵다.  스스로 몸에 보라색을 칠하면 남들 눈에 띄긴 하겠지만, 그럴 필요성 혹은 그랬을때 받게 될 부담이 더 크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평범해지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그 동안 이뤄낸것을 잃게될 부담까지 더 해지지기 때문이다. 



    리마커블한 삶?


    사람들은 리마커블해지는 삶이란 김연아나 스티브잡스같은 거창함을 생각한다. 그런 초 리마커블한 삶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세상사람들이 평범해지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충분히 리마커블해질수 있기 때문이다. 구지 보라색 페인트를 몸에 두르고 거리를 활보할 필요는 없다. 눈에는 띄겠지만, 그게 좋은 의미의 놀라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든 리마커블은 존재한다. 모든면에서 리마커블해질 수는 없다. 리마커블하다는것은 단지 평범함에서 조금더 우위에 있다는 의미일것이다. 중국에서 쿵푸는 무술만은 아니다. 평생에 걸쳐서 배우는 무언가를 쿵푸라고 한다. 우리나라말로는 공부다. 교과서에서 달달외우는 단어들이 아니다. 어제보다는 더 넓고 깊은 생각을 갖게 되는것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평범함의 기준선을 알기 위해서다. 지금 현시대의 평범함은 무엇일까? 를 알수 있게 되는것이 공부다. 수많은 오디션을 보면, 평범함의 기준을 모르고 참여자들을 본다. 지금 현 시대의 가수들의 평범한 기준보다 조금이라도 높아야 눈에 띄고 생방송까지 진출할수 있다. 단순히 동네에서 노래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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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파는아이 @ nalab.kr